교포신문 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  세기말(19세기) 화려함이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Wiesbaden) ③
교포신문 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
세기말(19세기) 화려함이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Wiesbaden) ③

교포신문 조인학 편집장과 함께하는 역사산책
세기말(19세기) 화려함이 원형 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Wiesbaden) ③

역사산책은 사건의 기록이라 할 수 있는 역사서가 아니라, 당시의 사람들 그들의 삶속으로, 그들의 경험했던 시대의 현장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기쁨과 좌절을 함께 공유하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이다.

또한 작은 벽돌 한 장, 야트막한 울타리, 보잘 것 없이 구석에 자리 잡은 허름한 건물의 한 자락이라도 내 자신이 관심과 애정으로 그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곧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따라서 역사산책은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내 삶의 터전과의 대화이기도 하다.

 

도시 스스로가 빚어내는 유럽 문화의 아름다움을 체험하자

고대 로마시대부터 온천지로 알려진 비스바덴, 중세에는 북구의 니스(독일어로 Nizza)로 유럽 귀족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던 비스바덴, 근대 건축의 정수인 신고전주의, 역사주의, 유겐트스틸 등 세기말의 화려함이 원형그대로 살아있는 비스바덴.

이번 비스바덴 역사산책을 통해 독일의 전형적인 제후국가의 하나인 나사우 공국(Herzogtum von Nassau)을 중심으로 격동의 19세기의 독일 역사, 오늘날 헤센주의 탄생을 살펴보며, 더불어 그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한다.

 

세계적인 휴양지로 이름 떨친 비스바덴

지난 연재에서 우리는 비스바덴 시청 앞 광장의 각 건축물들을 살펴보며, 나사우공국의 탄생과 몰락, 보오전쟁 후 프로이센에 합병된 뒤, 빌헬름황제의 치세하의 비스바덴을 역사와 당시 정치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제 시청 앞 광장을 떠나 구 시가지로 들어가 휴양지로 명성을 떨친 비스바덴과, 곳곳에 남겨진 역사 흔적을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독일 최초의 비엔나식 커피하우스 Maldaner

시청앞 광장에서 시장길(Marktstrasse) 올라가다보면 오른편 34번지에 비엔나 이외 지역에서는 최초로 비엔나식 커피하우스로 개장된 Café Maldaner가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1683년 오스만제국의 유럽침공 당시 비엔나를 포위하고, 공격을 하던 오스만제국이 포위전을 포기하고 돌아갈 때 남겨진 커피콩 자루를 비엔나 사람들이 발견하며 유럽에 커피가 소개되었다고 한다.

이후 비엔나에서는 커피문화가 발전하게 되었고, 비엔나의 “커피하우스”는 비엔나 상류층과 문학가, 예술인들의 응접실로서 사교적 만남의 장소로서 뿐만 아니라 작업 공간으로도 활용되었다고 한다.

비스바덴의 Café Maldaner는 비엔나지역 이외의 최초의 커피하우스로 1859년 문을 열었다는 사실은 당시 비스바덴이 유럽 내에서 휴양지와 문화와, 사교의 한 중심지였음을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다.

160년 이상의 역사를 지난 Café Maldaner에 들어서면 19세기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되는데, 벽과 천저앙의 아름다운 장식, 오래된 목재로 된 탁자와 바닥 등, 입구의 나무 회전문을 통과하는 순간 19세기 중반으로 시간이 되돌아가는 마법이 시작된다.

비스바덴을 방문한 독자들은 비스바덴 시민들이 “비스바덴의 거실이자 영혼”이라 부르는 Café Maldaner에서 정통 커피문화를 경험하기를 적극 권한다.

 

Michelsberg: Judische Gedenkdtätte Römertor

Café Maldaner에서 계속해 야트막한 경사 길을 올라가다보면 Kirchgasse와의 사거리가 나오는데, 우리는 계속 직진해 언덕과도 같은 Michelsberg으로 향한다. 산이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작은 언덕에 불과한 높이이다. 그러나 비스바덴 구시가지에서는 가장 높은 지점이다.

서울의 청계천고가도로처럼 독일 재건이 한창을 당시인 1960년대 이곳부터 시내를 통하는 고가도로가 건설되었는데 시민들의 요청과 시의회 의결로 2002년 고가도로를 철거하고 다시금 옛 모습을 되찾았다.

이 언덕위에는 원래 869년 당대 최고의 건축가의 한 사람인 Philipp Hoffmann에 의해 35m 높이의 매우 아름답게 지어진 유대인회당(Synagoge)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나치에 의한 박해와 “수정의 밤”으로 알려진 1938년 11월 10일 반유대주의 물결에 훼손, 파괴되었고, 결국 1939년 완전히 철거되고 말았다. 이후 이곳에서 시작된 고가도로로 아름답던 유대인 회당과 그들의 피해는 잊히고 말았다.

그러나 2010년 비스바덴 시는 비스바덴 시민인 유대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기념건축물을 세우기로 결정하고 건축을 시작, 1년 뒤인 2011년 1월 완공되었다. 이 기념건축물에는 1935년부터 1945년 사이 나치에 의해 살해된 1507명의 유대인들의 이름이 각각의 석판형태로 새겨져있다. 이름이 새겨진 벽면 일부에 빈 칸 형태로 남아있는 부분은 지속적 역사규명을 통해 새로이 확인될 유대인 희생자를 위한 자리이다.

유대인기념건축물에서 왼편으로 걸어가면(Coulinstrasse) 우리들 눈앞에 성문처럼 보이기도하고, 회랑을 지지해주는 석조다리처럼 보이는 고대 로마양식의 건축물이 나타난다. 바로 로마의 성문이라는 Römertor이다. 그러나 여기서 보이는 성문은 Römertor가 아니다 로마시대 성곽출입문이었던 Römertor는 Coulinstrasse에서 돌계단을 통해 내려와 시내로 향하는 Am Römertor 길에서 돌아보아야 발견할 수가 있다.

기원 3-4세기에 축조된 외적(게르만족)을 방비하는 성벽 이라는 뜻에서 “Heidenmauer”라는 성곽은 1806년 이전 비스바덴 시가지의 외각을 감싸고 있던 이 성벽이었다. 그러나 도시 개발과 더불어 1902년 Coulinstrasse를 개통하면서 성곽 중간을 터널처럼 뚫게 되고, 오늘날의 모습으로 축조되었고, 회랑을 바치고 있는 터널형식 건축물을 Römertor로 잘못 인식하게 만든 것이다.

따라서 Coulinstrasse에서 보이는 로마유적은 “Heidenmauer”가 올바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도시개발에 따른 유적 훼손은 독일도 피할 수가 없었으나, 그것을 보상이라도 하는 듯, Römertor의 주변부를 공사과정에서 출토된 고대 로마유적(석상, 석판 등)으로 장식하였고, 시내에서 보이는 면을 로마 성곽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조성하였다.

한편 “Heidenmauer”가 외적을 방비하는 성곽이라는 것이 그동안 정설이었으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성곽의 기능보다는 로마가 자랑하는 수로(물을 공급하기 위해 성벽, 또는 다리형태로 지어진 건축물)였을 것이라는 주장이 큰 힘을 받고 있다. 이러한 로마시대 수로 건축물은 마인츠 Zahlbach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휴양지 비스바덴 19세기 영광의 현장 Kranzplatz로 가는 길

이제 우리는 Römertor에서 시내로 접어든다. 우선 Römertor의 회랑에 올라 비스바덴 시내를 굽어본 뒤, 회랑아래 시내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통해 시내로 다시 들어간다.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벽에는 이곳서 발굴된 다양한 로마유적들도 감상할 수가 있자.

돌계단을 내려서면 Am Römertor길이 나오고 이 길 끝에서 Langgasse를 만나가게 된다. 우리는 왼편으로 돌아 Kranzplatz 방향으로 향한다. 약 100m 정도 걸어가면 온천도시 비스바덴의 대표적인 로마식 사우나인 Kaiser-Friedrich-Thermen이 나온다.

원래 Kaiser-Friedrich-Bad라고 불렸던 Kaiser-Friedrich-Therme는 1910년에서 1913년 사이에 건축가 A. O. Pauly가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은 비스바덴의 역사적인 사우나 장이다. 이곳에는 또한 64.6°C온도의 온천수도 공급되고 있다.

사우나 장 입구는 모자이크 타일로 된 소위 아일랜드-로마식으로 장식되어 있어, 여타 사우나장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총 면적은 1,450m²으로 면적에 테피다리움, 수다토리엄, 사나리움, 러시아식 한증탕, 핀란드식 사우나, 석조 한증탕을 갖춘 다목적 사우나장이다.

로마식 사우나 또는 로마식욕탕은 사우나 방식에 따른 특징이 아니라, 그 형태에 따른 명칭으로, 중앙에 욕조가 있고 그 주변 공간을 운동, 담소 등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형태의 대형 사우나장, 또는 목욕장인 것이다.

우리는 Kaiser-Friedrich-Thermen 입구에서 그 화려한 모자이크 형식의 벽장식과 천장화를 감상하고, 다시 Langgass로 나와 Kranzplatz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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